선생님의 붓끝에서 시작된 나의 길
최필규 서양화가, 전 수원여자대학교 교수
중학교 시절, 까까머리 소년이던 나는 미술실 문을 열 때마다 한 사람을 마주했습니다. 언제나 조용히 붓을 들고 계시던 김흥수 선생님. 그 모습은 내게 단순한 ‘선생님’을 넘어, 예술이라는 세계의 문을 처음 열어주신 존재였습니다. 말보다 삶으로 가르치셨고, 지시보다 태도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때 나는 아직 몰랐습니다. 그 시간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씨앗이 될 줄은.
선생님께서 서울로 전근하신 후, 한 번은 개인전 뒤풀이 자리에서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망우동 자택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사모님께서 정갈히 마련해주신 이부자리에 나란히 누워 나눈 밤샘 대화는 지금도 제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작품 세계에 대한 깊은 고민, 유럽 미술여행에서 받은 영감, 구상에서 추상으로의 전환에 대한 고뇌까지—그 밤은 저에게 ‘예술가로 산다는 것’의 실존적 무게를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습니다.
오래 전 경기도미술협회 모임에서 선생님의 은사이신 고(故) 황병식 선생님을 뵌적이 있었습니다. “흥수 제자의 제자”라며 반갑게 맞아주시던 그 따뜻한 인사. 황 선생님은 김 선생님을 ‘천재 소년’이라 부르셨고, 그 말의 의미는 훗날 선생님께서 남기신 논문과 시집을 통해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활동하시면서도 선생님은 평택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평택미술협회 창립 당시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 인준을 위해 힘을 써 주셨고, 제자들의 전시가 있을 때면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평택을 찾으셨습니다. 얼마전 인사동 나의 개인전 전시장에 아드님의 등에 업혀 방문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자를 향한 진정한 사랑이었습니다.

앞줄 오른쪽 김흥수 선생님과 나(뒷줄 가장 오른쪽); 2025
그리고 이제, 평택에서 열리는 김흥수 선생님의 노년 초대전. 50여 년 전 평택 2인전 이후 반세기 만에 고향에서 다시 펼쳐지는 이 전시는, 더 이상 붓을 들 수 없는 선생님의 건강 상태를 생각할 때 더욱 의미 깊게 다가옵니다. 다행인 것은 평택미술사 연구자와 함께 선생님의 자택을 찾아 작품 세계에 대한 대담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고, 선생님의 많은 주요 작품들이 안성 동아방송대학교 미술관에 소장되어 언제든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시장에서 휠체어에 앉아 어눌한 말투로 제자들을 반기시던 선생님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냈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말로 다할 수 없는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나는 그날, 다시금 확신했습니다. 김흥수 선생님이야말로 평택 미술의 진정한 뿌리라는 사실을.
이제 선생님의 제자들은 미술대학 교수, 학장, 평론가, 교사와 교장, 작가로 활동하며 그 뜻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모든 시작은, 미술실 한켠에서 조용히 붓을 들고 계시던 한 분의 존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글을 빌려, 한 시대를 함께해 주신 그 사랑과 가르침에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선생님, 당신은 저의 미술 속 뿌리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