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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명: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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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미술관 2025
천성명 개인전 <그리고>

2025. 4. 25. (금) - 2025. 11. 2. (일)
이상원미술관 본관 2,3층 

 

정확히 20년 전인 2005년 천성명 작가의 5번째 개인전 [달빛 아래 서성이다, 갤러리상, 서울 2005.1.8-2.4] 전시를 진행했을 때의 느낌이 여전히 남아있다. 천성명 작가뿐 아니라 큐레이터로 조금씩 경력을 쌓아가고 있던 나도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시기였다. 삶과 예술에 대한 열정과 불안함, 막연함을 작업으로, 전시로 쏟아내는 데 여념이 없었던 때였다. 그 전부터 그리고 그 뒤로도 천성명 작가는 누가 봐도 한번 접하면 좀처럼 잊지 못할 강렬한 이미지를 창작해왔다. 작가가 만든 세계는 우울한 우화였으며 동시에 현실적이었다. 의식과 무의식이 교차하는 상징으로 구성된 꿈의 장면들 같았다. 2016년 11번째 개인전 [그림자를 삼키다, 우손갤러리, 대구 2016. 10.6-12.23]까지 내용과 형식에 있어 일관된 맥락을 유지하며 조금씩 확장하고 변주했다. 작가는 입체를 기반으로 하였으나 사진, 소리, 텍스트, 페인팅, 극 연출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했다. 전시를 만들 때는 개별 오브제에 한정하지 않고 공간 전체를 새롭게 재탄생 시켰다. 작품을 통해 던져진 작가의 실존적 물음은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했고 새로운 전시마다 전개되는 이야기에 대한 기대를 품게 했다.

 

9년 만의 신작을 내놓게 된 2025년 전시 작품은 형식과 내용에 있어 상당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긴 공백이니만큼 변화에 대한 작가의 갈망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의 의지만으로 어려운 것이 작업의 변화이다. 감히 말하건대 천성명류의 작가는 있는 그대로 자신의 생활이나 감정과 유리된 작업을 할 수 없다고 본다. 작품의 변화는 작가의 변화이며 삶의 변화이다. 11번째 개인전과 12번째 개인전 사이 가장 큰 변화를 들자면 작업실을 직접 짓고 새로운 환경을 만든 것이다. 2년여에 걸친 노동 끝에 2020년에 완성된 공간은 그의 작업실이자 사람들과 교류하는 장으로 운영되었다. 작업 공간을 대중에게 오픈하여 전시와 상관없이 작품을 볼 수 있게 했다. 그곳에서 진행한 일련의 워크샵 프로젝트를 통해 미술계 이외의 사람들과 소통이 이뤄졌다. 다양한 직업과 나이의 사람들은 유일한 공통점인 자기 주도적 삶의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관심사를 쫓아 천성명 작가의 스튜디오에 모여들었다. 이처럼 주된 생활공간의 변화와 쌍방향 소통, 바삐 진행되던 전시 스케쥴에서 조금은 거리를 둔 삶의 방식은 천성명 작가의 생각과 정서를 천천히 현재의 상태로 물들였다. 물론 작품의 토대를 실제 삶에 두고 현실의 변화를 주시하되 자신과의 진솔한 대화에서 얻어진 통찰을 작업의 밑바탕으로 삼는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작가는 흙작업이 가진 물리적인 한계에서 벗어나고자 과감하게 캔버스 작업을 전면으로 가져왔다. 23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캔버스 작업은 이번 신작전에서 보여주는 작품에 이르기까지 크게는 두 차례의 변화를 겪었다. 작업 초기에 풍경을 소재로 했다. 이후 공산품-인체 모양의 오브제-을 소재로 구상회화를 그렸고 이번에 전시로 발표하게 된 추상회화로 옮겨갔다. 전시 작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단순한 줄무늬의 반복은 천성명 작가가 자신을 대상으로 제작한 인물 작품의 의상인 줄무늬 티셔츠를 떠올리게 한다. 살색이나, 핑크색, 밝은 세룰리안 블루도 <부조리한 덩어리>(2012, 2015년 개인전에 발표)에서 비치던 색상으로 낯설지 않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이전 작품과의 연결고리를 다 찾고 나면 천성명 작가의 새로운 작품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남는다. 드라마틱한 이미지를 만들었던 작가이기에 더욱 대비되는 무심히 채색되고 느슨하게 줄 그어진 색면화의 평이함. 나른해 보이기까지 하는 태평함과 고요함이 오히려 수수께끼처럼 다가온다. 한편으로는 작가의 내면의 풍경이라 이해되었던 어둠과 모순의 정서가 종식되었으리라는 추측으로 왠지 모를 안도감이 느껴진다. 앞서 언급한 대로 작가는 본격적인 페인팅의 시작을 ‘풍경화’로 출발했다. 자아에 집중하여 심연 깊은 곳까지 의식의 빛을 드리웠던 시기를 지나 자신을 커다란 풍경 속의 일부로 멀리 두고 바라보게 된 걸까. 줄무늬가 있는 색면화는 평온한 들녘이나 수평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대 미술사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추상의 출현은 신화, 종교, 역사의 이야기로부터 미술의 독자성을 쟁취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추상은 점, 선, 면, 색이라는 조형 요소로 이루어진 감각적인 세계로 순수한 시각적 즐거움과 그로 인한 정서의 충만함을 추구한다. 천성명 작가의 추상 작업은 더 많은 정보와 더 강한 감각적 자극을 제시하고자 하는 욕망을 내려놓은 작가가 현재 시점에서 신중하게 선택한 조형 형식이다. 마치 이전 작업에서 흙으로 빚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실체를 파악하고 물리적인 덩어리로 실존의 순간을 남기고자 했던 맥락과 같은 것이다. 이전의 극적인 요소와 상징적인 이미지 작업을 일컬어 양(plus)의 에너지라고 한다면 근작의 시도는 확실히 음(minus)의 에너지처럼 여겨진다. 작금의 현실이 물질뿐 아니라 정보와 감각적 자극의 포화로 말미암아 모으고 키우는 것보다 빼고 줄이는 가치가 절실해지는 것과 맞물린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변화된 작가의 삶과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현실 세계 속에서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모호한 작품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제 작품은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린다. 분명한 것은 작가가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 일방향의 소통방식은 이 작품에서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천성명 작가에게 있어 작품 제작과 전시 개최는 자신의 삶 전반을 통해 실현하는 ‘예술 활동’의 일부분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겠다. 물론 이전 작업들과 비교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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