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초현실주의와 한국근대미술》개최
◇ ‘근대미술가의 재발견’ 두 번째 시리즈, 한국미술사 속 숨겨진 6인의 초현실주의 근대미술가 조명
- 김욱규(金旭奎, 1911-1990), 김종남(金鐘湳, 1914-1986), 김종하(金鍾夏, 1918-2011), 신영헌(申榮憲, 1923-1995), 김영환(金永煥, 1928-2011), 박광호(朴光浩, 1932-2000)
- 당대 주류예술을 뒤로 한 채 새로운 미적 경험과 현실을 낯선 방식으로 표현한 6인의 작가를 통해 살펴보는 한국근대미술의 다양성 확인 기회
◇ 국내외 30여 기관 및 유족, 개인 소장 미공개 작품 및 아카이브 등 약 300여 점
◇ 4월 17일(목)부터 7월 6일(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김성희)은 20세기 한국미술사에서 소홀히 다루어진 근대미술 작가를 발굴하고 재조명하기 위해 2019년 처음으로 개최한 《근대미술가의 재발견: 절필시대》 이후 두 번째 시리즈로 《초현실주의와 한국근대미술》을 4월 17일(목)부터 7월 6일(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한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초현실주의는 인간 정신을 구속하는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꿈꾸며 예술로써 삶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혁명적인 운동으로 1920년대 말 전 세계로 확장되었다. 한국 미술계에서는 1930년대 말 김환기, 이중섭, 유영국 등 일본 유학생들을 통해 시도되었으나 식민과 전쟁, 분단으로 인해 이후 적극적으로 전개되지 못했다.
비록 한국미술사에서는 초현실주의가 주류가 되지는 못했지만 세상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평생 초현실주의를 지향한 작가들이 있다. 김욱규(金旭奎, 1911-1990), 김종남(金鐘湳, 마나베 히데오(眞鍋英雄), 1914-1986), 일유(一有) 김종하(金鍾夏, 1918-2011), 신영헌(申榮憲, 1923-1995), 구로(久路) 김영환(金永煥, 1928-2011), 향보(鄕步) 박광호(朴光浩, 1932-2000) 등 6인의 작가는 추상미술, 실험미술, 민중미술 등 당대의 전위를 뒤쫓는 대신 자신만의 초현실주의적 세계를 탐구하고 완성했다.
김영환, 〈자화상 풍경〉, 1962, 캔버스에 유화 물감, 66×100cm, 유족 소장
김욱규, 제목 없음, 1960년대 중반-1970년대 초, 캔버스에 유화 물감, 60x50cm, 유족 소장
전시는 총 2부로 구성되며 6명의 작가를 소개하기에 앞서 1920년대 말~1930년대 초 ‘초현실주의’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한 이래 초현실주의가 한국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전개되었는지 문화번역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20세기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미술평론가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의 「초현실주의 선언」의 마지막 문장에서 제목을 따온 1부 ‘삶은 다른 곳에 있다’(1전시실)에서는 작가가 의식적으로 초현실주의를 실천하지는 않았지만 작품 속에서 그 유산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됐다. 눈에 보이지 않는 꿈과 무의식의 세계, 현실의 다양한 차원을 경험하게 하는 작품과 자동기술, 전치, 콜라주, 이중영상, 왜곡 등 초현실주의의 주요 기법을 사용해 우연과 경이, 혁명의 가능성을 꾀한 작품들을 살펴본다.
김종남(마나베 히데오), 〈나의 풍경(ぼくの風景)〉, 1980, 캔버스에 유화 물감, 73x91.5cm, 유족 소장
김종하, 〈선인장(생(生)〉, 1977, 캔버스에 유화 물감, 162×112.5cm, MMCA 소장
2전시실부터 4전시실까지 이어지는 2부에서는 6명의 작가를 본격적으로 조명한다.
2전시실에서는 1930년대 일본에서 미술공부를 하며 당시 추상과 함께 최고의 첨단미술로 간주되었던 초현실주의를 직접 체험했던 김종남과 김욱규를 소개한다. 마나베 히데오(眞鍋英雄)라는 이름으로 더욱 잘 알려진 경남 산청 출신의 김종남(金鐘湳, 1914-1986)은 일본미술학교 졸업 이후 줄곧 일본에서 작업하며 재일조선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겪은 내적 갈등을 작품 속 ‘숨은그림 찾기’ 같은 기묘한 표현법으로 그려냈다. 함경남도 함흥 출신인 김욱규(金旭奎, 1911-1990)는 가와바타화학교(川端畫學校)에서 공부했다. 1.4후퇴 때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월남한 그의 작업에는 이산(離散)의 트라우마가 짙게 배어있다. 미군부대에서 초상화를 그리던 일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던 그는 1970년대부터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채 작업에만 전념하여 절대고독 속에서 꿈과 현실,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을 오가는 자신만의 초현실주의적 세계를 완성했다.
박광호, 〈음양(陰陽)Ⅰ〉, 1970년대 중반, 캔버스에 유화 물감, 73×61cm, 유족 소장
송혜수, 〈설화〉, 1942, 캔버스에 유화 물감, 50.3×60.7cm, MMCA 소장
3전시실에서는 한국근현대미술에서 중시했던 전통의 현대화, 민족 정체성 탐구에 구속되지 않고 개인의 내밀한 욕망이나 에로틱한 환상을 그려낸 김종하와 박광호를 소개한다. 이들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거나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등 다른 네 명의 작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술계와 교류를 가졌다. 일본 제국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김종하(金鍾夏, 1918-2011)는 1956년 도불(渡佛) 이후 본격적으로 초현실주의를 탐구했다. 그는 사실주의 기법으로 관능적, 신화적 세계를 구축했다. 박광호(朴光浩, 1932-2000)는 〈결(結)〉, 〈향(響)〉, 〈음양(陰陽)〉, 〈요철(凹凸)〉, <군집(群集)〉등 연작을 통해 억압된 정념과 물신숭배적 욕망을 드러낸다. 그는 초현실주의 오브제에 대한 이론적 연구를 자신의 작업에 적용했다.
신영헌, 〈신라송〉, 1968, 캔버스에 유화 물감, 161.7×129.5cm, MMCA 소장
황규백, 〈분홍색 손수건과 달걀〉, 1973, 종이에 메조틴트, 42×34.5cm, MMCA 소장
4전시실에서는 김영환과 신영헌을 소개한다. 이들의 작품은 도상이나 공간구성, 기법 등에 있어 조르조 데 키리코나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과 같은 유럽 초현실주의의 특징과 함께 해방 후 세워진 국내 미술대학 1세대로서 한국 근대사 및 미술사의 토대 위에 형성된 독특한 초현실주의적 세계를 보여준다. 김영환(金永煥, 1928-2011)은 함경남도 안변 출신으로 홍익대를 졸업하고 반(反)국전을 내세운 현대미술운동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했지만 곧 미술계와 거리를 두고 문학성, 환상성 강한 구상과 기하학적 추상, 애니미즘적 세계를 그렸다. 평안남도 평원 출신인 신영헌(申榮憲, 1923-1995)은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수학했다. 주로 실향민화가, 종교화가로 알려진 그는 전쟁과 분단으로 고통 받는 조국 산천과 자본주의로 비인간화된 도시의 모습을 인간의 형상과 결합한 기이한 이미지로 표현했다.
전시 기간 중인 5월 17일(토)에는 현대미술사학회와 공동주최로 초현실주의를 주제로 한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한다. 한국근대미술에서 초현실주의의 태동과 위치짓기에 대한 미술계의 심도있는 토론이 예정돼있다. 자세한 내용과 참가 신청은 향후 국립현대미술관 누리집(mmca.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