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I미술관(관장 이지현)은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 2025 OCI YOUNG CREATIVES의 선정 작가인 김피리의 개인전 《네발 달린 짐승들》을 4월 10일부터 5월 24일까지 OCI미술관 2층 전시장에서 선보인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나 세상을 구해낸 설화 속 주인공은 물론, 뛰어난 초능력으로 악당과 맞서 싸우는 영화 속 영웅까지. 그들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한다. 살다가 예기치 못한 장애물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시련을 극복한 영웅을 꿈꾸며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간다. 어쩌면 일종의 대리 만족일지도 모른다. 김피리는 이러한 영웅담의 서사를 재구성한다.
이번 전시는 김피리의 영웅담을 그린 커다란 그림책이다. 허구의 세계와 현실의 기억들이 교차되며 펼쳐지는 초월적인 장면들을 엮어낸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비현실적인 존재들로 담아내며, 그리기를 통해 솔직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녀의 용감한 행적은 세상과 연결되는 창구이자,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로써 관객과 마주한다.
“네발 달린 짐승들”은 인간의 감정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전시명이다. 일반적으로 인간과 비인간을 구별할 때 인간한테는 도덕과 이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동시에 인간의 감정 깊은 곳에는 동물의 본능적인 메커니즘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전설 속 동물인 키메라, 곤충, 천사, 자연 등 인간과 비인간과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형상이 결국, 인간의 본성도 짐승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화면의 배경은 주로 숲이다. 원초적인 본능과 자연의 섭리를 상징하는 숲은 작가의 상태와 상황을 드러내는 지표이다. 어떤 숲은 안전하고 편안한 쉼터로 묘사되기도 하고, 또 다른 숲은 주인공을 위협하는 어두운 존재가 숨어 있는 위험한 공간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이번 전시는 크게 전반부,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는 영웅의 유아기부터 청년기까지의 일대기를 다룬 장면을 화면에 담아내고, 후반부는 영웅담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을 제외한 인물들이나 사건을 다루고 있는 작업들로 구성하였다.
특유의 날카롭고 섬세한 선으로 표현한 에칭 작업을 총 8점의 시리즈로 작업한 소품부터 한 변이 400cm에 달하는 대작을 포함한 20여점 점의 평면작업을 선보인다. 특히, 2층의 높은 층고 구간은 작가가 생각한 종교화의 구성을 공간에 녹여냈다. ‘신 앞의 단독자'라는 쇠렌 키르케고르 철학에서 영감을 받아, 신과 나(인간)의 일대일 관계를 드러내기 위해, 인간과 신을 나타낸 작품을 서로 마주보는 구도로 배치하였다.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주저하는 김피리의 자세는 얇고, 섬세하며, 짧게 중첩되는 두드러진 스트로크로 엿볼 수 있다. 면과 면의 분할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여백은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형상으로 존재한다. 작가는 회화적 서사를 통해 인간의 본능을 발견한다. 영웅은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머나먼 여정을 떠난다.
김피리 Kim Piri
kimpiri.rrr@gmail.com │ @ kim_piri_iii
김피리(1995~)는 홍익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디자인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김피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억과 경험들을 영웅담이라는 서사로 편입시켜 재구성한다. 이번 OCI미술관 개인전 《네발 달린 짐승들》은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사건들을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인 반인반수 형상이 등장하는 장면들로 풀어낸 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