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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OID] 오원배: Moving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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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OID] Oh Wonbae: Moving Life
2025.04.09 ~ 2025.05.30



M’VOID는 통찰적 사유로 작품 세계를 다져가면서 동시대 미학적 가치에 질문을 던지는 중진 작가와 해외 작가의 전시를 기획하고 선보이는 프로그램입니다.



불확실한 세계와 불완전한 세계


​고용수 | 미술이론가

오원배의 개인전 《Moving Life》는 격변의 시대와 죽은 생명(Still Life)이 아닌 움직이는 생명, 살아있는 것과 같은 정물화를 중의적으로 표현한다. 이 중의성은 두 가지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대형 회화와 거울지에 그려진 꽃 정물화가 그것이다. 필자는 격변의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대형 회화와 꽃을 실재하는 것처럼 그린 회화를 각각 불확실한 세계와 불완전한 세계로 명명하고 분석할 것이다. 먼저 불확실한 세계로서 <무제>이다. 세로로 긴 대형 회화의 상단에는 인물의 흉상이 거꾸로 그려져 있고 그 아래로 구조물과 숫자가 있는 공, 저울 등이 어지럽게 놓여 있는 모습이다. 가운데 위 인물에서 왼쪽에 쓰러진 붉은 저울을 지나 그림의 하단으로 내려오면 모래시계와 침 없는 초록색 저울로 이어지고 계단과 같은 공간을 통해 시선은 밖으로 나간다. 구조물의 형태들은 관람자의 시선을 연결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전체적으로 무채색의 안료로 그려진 화면 속에 붉은색의 쓰러진 저울이나 바로 서 있지만 침이 없는 초록색 고장 난 저울에 시선이 고정되는데, 사물이 지닌 재현적 이미지가 강하게 와 닿기 때문이다. 작가는 2023년 6월 어느 날 목포로 떠난 여행에서 구도심 한 곳에 있던 중고품 판매상에 쌓인 낡고 고장 난 저울을 우연히 접한 뒤 작품의 소재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2023년 인천아트플랫폼 개인전의 대형 회화에 그려진 침이 있는 저울, 2024년 아트사이드 개인전에서 공간 내에 설치작품으로 선보였던 실제 저울은 이번 작품에서 이미지로 다시 등장하였다. 도시와 삶을 늘 관찰해 왔던 작가가 발견한 오브제는 우연을 넘어 사물에서 이미지로, 의미를 부여받은 사물에서 서사적 상징으로 재구성된 셈이다. 고장 난 저울이 놓인 작위적인 상황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고장 난 저울은 제 기능을 상실한 현시대의 단면을 상징한다. 국내 현실을 넘어 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지정학적 갈등이나 기후 문제 등 그 이상의 광의적 맥락에서 인류적 관점으로 볼 것을 제안한다. 화면 중간에 배치된 공의 숫자는 규칙보다는 시간 게임과 같은 불확실성을, 모래시계는 흘러가고 있는 현재의 시간성과 함께 해석하도록 한다. 여러 가지의 이질적인 사물의 병치로 낯섦을 유도하기보다 하나의 서사로 작동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과거부터 줄곧 미묘한 사회문제에 대한 이슈를 표현해왔던 점이다​. 작품의 연속성과 관련하여 보았을 때도 2023년 작품에서 저울을 든 정의의 여신상 이미지와 기중기 이미지가 도시개발 풍경과 함께 등장했던 점을 미루어보면 저울이 갖는 알레고리적 어법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현실의 정치에 예술로 직접 발언하기보다 거리를 두는 그의 태도를 밑바탕에 깔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번 전시에 등장한 저울은 앉은뱅이저울로 용수철에 힘이 가해졌을 때, 일정한 비율로 줄어드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대체로 시장이나 식품점에서 매매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전자식 저울 못지않게 많이 보이는 사물이다. 저울의 숫자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제도, 규율로 읽히고 계량의 행위는 우리의 삶을 정해진 기준에 맞춰 측정하는 것으로 읽힌다. 그가 그린 저울의 숫자는 제거되어 있고 용수철은 이탈되어 있으며 선명하게 빛나는 안료로 그려진 공과 숫자는 강조되어 있다. 이는 세계 내에 존재하는 사회적 제도와 장치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불확실한 세계에 지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본래 사회 내에 순응하며 살아가야 할 운명으로 태어나지만 정의와 평등과 같은 가치를 위해, 제 기능을 찾기 위해 저항해 오기도 했다. 이 작품에 저항하는 인간의 형상은 없고 작위적 상황이 주는 상징적 분위기만 느낄 수 있는데, 그것은 불확실한 세계에 종속된 보편적 인간의 혼란스러움, 불안감이다. 막연히 예측 불가능한 것과 다른 정상적이었던 것이 작동하지 못할 때의 불확실함은 회복의 가능성도 내포한다. 그가 줄곧 표현해 왔던 뒤틀린 자세로 고통 받는 듯한 인간 형상이 아닌 새로운 인간이 화면 상단에 표현되어 있는데, 그는 이상적 세계를 열어줄 존재를 통칭하여 ‘거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인물이 특정 인물이나 신적 존재, 물질, 초월자로 구체화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거인이 화면의 상단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그려지지 않은 것과 전시 공간의 위층에서 아래로 내다볼 때의 시점을 고려해서 그려진 점을 고려하면 거인은 추종의 대상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만나는 대상과 같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았을 때에도 거인은 거꾸로 그려져 권위자, 지배자로 느껴지지 않는다. 거인에 대한 실제 지목, 이상적 세계의 유무에 대한 물음보다 제 기능이 상실된 사회가 원하는 이상적 세계는 무엇일지 고민하게 하고 관람자의 상상을 유도한다.

다음으로 넘어가 불완전한 세계로서 <무제>를 살펴보자. 촬영이나 교육용 재료로 사용되는 거울지 위에 꽃 정물이 그려져 있다. 매끈하게 재현된 꽃이 아닌, 느슨하면서도 유화의 촉각적인 터치들로 그려진 꽃은 자연물이 아닌 조화(造花)를 보고 그린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꽃은 과거에 이중풍경이라는 주제와 드로잉에서 빈번히 나타나는 소재였다. 특히 이중풍경에서는 사회적 구조를 상징하는 구조물과 대비되는 자연의 이미지에 가까웠다. 이번 작품은 2023년 아트사이드 개인전에 출품된 작품의 연장선에서 거울지 위에 그린 점이 특징적이다. 그의 작품은 일상적 경험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왔는데, 식물원 방문은 그중 하나였다. 식물원에서 접한 생동감 넘치는 꽃을 어떻게 다르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정물화(靜物畵)의 어원이 영어의 ‘Still Life’와 불어의 ‘nature morte’에서 고요하고 정적인 생명, 죽은 자연이라는 뜻을 지니는데 자연은 원래 살아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생명력을 잃은 조화이지만 본래의 생명력을 부여하고 싶다는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조화를 사실적 재현으로 생화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거울지를 바탕 재로 선택하고 그 위에 그려 깊은 공간감을 만들고 빛에 반사되는 현실과 어우러지면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그가 생명력을 부여한 꽃 이미지와 우리의 관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의 작품에서 재료와 안료에 대한 탐색, 회화의 방법에 대한 탐구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이다. 캔버스 틀을 지지대 삼은 평면을 벗어나 걸개그림 형식을 택한 것과 바탕 재로 거울지를 택한 것도 그러한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그가 사용한 거울지는 실제의 평면거울이 아닐뿐더러 표면이 매끈하지 않아 빛을 일정하게 반사하지 않는 속성이 있다. 평면거울은 우리의 모습을 실제처럼 보여주지만, 허상임을 즉각적으로 인식하도록 한다. 그러나 거울지는 실제의 모습을 온전히 반사하지 못해 불완전한 상(像)을 만든다. 시력을 상실하거나 하나의 막이 덮고 있는 것과 같은,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 같지 않은 뿌연 이미지의 상을 보여준다. 거울지 앞에 선 관람객은 그려진 꽃 사이로 가려진 모습에서 조각나고 파편적인 인간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그려진 꽃을 보고 있는 자신은 온전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된다. 거울지의 불완전한 현실 세계에 시각적 우위를 점유한 재현된 꽃 이미지가 역설적으로 실재와 가깝게 인식하게 된다. 마치 거울 단계의 상상계와 상징계가 뒤바뀐 것과 같은 경험을 선사하고 복제된 이미지보다 실재하는 이미지가 더 그럴듯하게 보이는 시뮬라크르의 역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거울지에 비친 현실과 꽃 이미지는 한 화면에서 통합된 불완전한 세계로 인식하게 되고 정지한 것처럼 느끼게 된다. 이 불완전한 세계는 관람자와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움직임을 반복한다. 

《Moving Life》는 상징적 의미를 통해 불확실한 격변의 사회를 인식하고 이상적 세계를 갈망하도록 하며, 거울지라는 재료와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가적 상상력을 통해 불완전한 세계를 인식하도록 한다. 궁극적으로 불확실과 불완전이 해소되는 희망적 삶으로의 움직임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 전시는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사회에 내재한 움직임의 의미를 사유해 보는 기회이자 저마다의 희망을 그려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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